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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때릴 수 있는 행복한 시간베트남 일상 2024. 2. 19. 18:21
박스와 나뭇가지를 태우면서 멍 때리는 행복한 시간 서울에 있을 때 부모님이 계시는 인천에 가게 되면 소일거리로 과수와 채소를 키우는 밭에 나가 일을 도와 드리고 돌아오곤 했다. 그 곳에 가면 가장 재미있는 일중에 하나가 나뭇가지들과 잡풀들을 모아 불로 태우는 것이었다.
불장난에 불과하지만 난 나뭇가지나 쓰레기들을 태우면서 그 동안에 그 모습을 보며 멍 때리며 갖는 시간이 왜 그렇게 재미있고 즐거운 지 모르겠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면서 자기를 불살라 멋지게 피어 오르는 것을 보면서 한 순간의 희열도 맛보고, 그 많던 나뭇가지나 종이박스들이 또 다 타 들어가 정말 한 줌의 재로 남는 것을 보면서 ‘인생의 끝은 이런 것이겠구나’라는 생각도 갖게 된다.
이 곳 Phu My, KNG mall이 좋은 이유 중에 하나가 마음대로 불장난을 할 수 있고 멍 때리는 시간을 만들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제품 박스들이 나오는 것들 중 지저분한 것들을 모아 주변에 흩어져 있는 낙엽들과 나뭇가지들을 모으면 때때로 대형 캠프화이어를 하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재료들을 가지고 불장난을 할 수도 있다.
가끔은 너른 풀밭에 불을 놓아 불길이 퍼져 나가는 것을 보면서 민중 봉기를 상상해 보기도 했었다. '꺼질 듯 꺼진 듯 하다가고 저 쪽에서 훅하니 다시 살아나 불길을 만들기도 하고, 가련한 불처럼 숨을 헐떡이다가도 옆의 잔 가지의 도움으로 다시 불길을 살려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처럼 참 끈질기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매장에 붙잡혀 있는 시간들 중에 혼자 이렇게 불을 놓고 그 모습을 멍 때리면서 보면서 이런 자유로운 시간을 만끽할 수 있는 이 순간이 내겐 가장 힐링을 주는 타임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없고 어떤 생각이 들어도 평안하게 느낄 수 있는 것. 미치도록 타오르는 불기둥을 보고 다 타 들어간 재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이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 주는 이 곳이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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