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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 대승불교의 진면목, 남베트남을 쓰러뜨리다
    베트남 개괄/베트남 입문 2024. 4. 18. 22:34

     베트남은 불교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불선 및 귀신신앙을 모두 함께 숭배하는 혼합주의적  신앙생활을 하는 불교신자가 베트남 인구의 약 ¾ 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 정식 불교신자는 그 중 30%로 보는 의견도 있슴) 그만큼 스님에 대해 존경하고 삶에 대해 의지하는 바가 큰 베트남에서 한 스님에 의해 역사가 바뀌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1963년 6월 11일, 사이공(현재 호치민市)의 중심가 사거리 한 복판에서 환갑을 지난 한 스님이 인신공양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틱꽝득(Thich Quang Duc) 이 그 분이다. 그 분은 베트남 최고위 고승중의 한 분이셨다. 여기서 인신공양이라 함은 심청전의 심청이 처럼 바다에 떨어져 공양을 하는 것이 아닌, 거리 한 복판에서 스님들과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신나를 뿌려 말 그대로 몸을 불태워 버리신 것이다. 

    틱꽝득 스님의 소신공

     그럼 도대체 왜 그런 엄청난 일을 벌이셨을까?

     일각에선 남베트남 정권에 반대하고 북베트남(베트콩)을 지원했기 때문이라고 하고 그래서 사회주의 베트남 공산당마저도 불교를 인정하고 지원한다는 말이 있다. 일면 맞는 부분도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남베트남 응오딘디엠 정권의 독재와 부조리가 전셰계에 폭로되고, 미국의 이 정권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게 되었고, 남베트남 인민들의 투쟁 열기가 가속되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베트남 내전이 지속되고 있던 상황이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인민들은 북베트남쪽으로 기울게 된 것이다.

     1955년부터 시작된 이 전쟁은 초기에는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의 내전의 성격으로 출발했으나, 한국전 이후 또다시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대립하는 대리전의 양상으로 발전했다. 이후 1960년대 초 미국이 개입하고 미국과의 동맹국인 서방의 여러 나라가 지원하면서 국제전으로 발전했다. 이 전쟁은 1975년까지 무려 20년에 걸쳐 계속되었는데 결국 남베트남과 미국의 패배로 끝났다. [ 베트남 내전, 다음백과 재인용 ]

      실질적인 사건 발생의 원인은 응오딘디엠 정권의 불교 탄압이었다. 응오딘디엠은 남베트남의 초대 총통이였는데 어릴 적 가톨릭 신부가 되는 것이 꿈일 만큼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총통이 된 후 부정부패와 독재를 실시하였고, 일가친척과 가톨릭 신자들에게 권력을 배분하는가 하기도 하였다. 특히 집권 초기 약속한 토지개혁도 당시 대부분의 지주세력이었던 가톨릭 세력의 결집을 위해 중도에 중단해 버렸다. 응오딘디엠은 '칸 라오'라는 5인 1조의 조직을 만들어 정부, 군, 야당 및 사회단체에 침투시켜 감시와 공격을 실시하였는데 이 조직과 구성원의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들로 구성되었다. 즉 이는 불교 탄압으로 귀결되었다. 베트콩을 색출한다는 구실로 불교 사찰과 마을을 폭파시키기도 하였으며, 많은 불교도들을 베트콩과 연계된 공산주의자로 몰아 탄압하고 처형하였다. 그러던 중 1963년 5월 8일, 즉 석가탄실일에 거리 행사를 진행하던 승려들을 경찰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수많은 승려들이 숨지거나 다쳤다. 

     이 사건이 발생한 후, 틱꽝득 스님은 베트남 불교를 위해 소신공양 하겠다고 결심하고 앞서 말한 6월 11일에 사이공시의 한 복판에서 이를 실천한 것이었다. 스님은 소신공양전에 따르는 스민들께 유언을 남기셨는데 "불어 탄 내 몸이 앞으로 꼬꾸라지면 나라가 흉하게 될 것이니 해외로 도피하라. 만약 뒤로 넘어진다면 우리들의 투쟁은 승리하고 평화를 맞게 될 것"이라고 한다. 소신공양후 스님의 몸은 뒤로 넘어지셨는데 신체학적으로 몸이 불에 타면 근육이 수축하여 앞으로 쓰러지는 것이 당연한데, 스님은 몸이 타들어가는 극도의 고통 중에도 의지를 잃지 않고 의지로 몸을 펴고 뒤로 넘어진 것이라 더욱 놀라운 것이다. 

     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 당시 영부인 역할을 하던 마담 누는 인터뷰에서 '땡중의 바베큐 쇼'라며 폄하하는 발언을 하였다. 이 발언은 수많은 베트남 인민과 미국의 캐네디 대통령의 분노를 샀고, 내부적으로 인민들은 남베트남을 부정하고 민심이 북베트남으로 기우는 계기가 되었고, 외부적으로 미국의 응오딘디엠 정권에 대한 지지 철회에 더하여 당시 총통의 하야에도 미국이 책임지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하게 됨으로써 베트남 내전에 있어 베트남 인민들의 민심이 한 쪽으로 완전히 기울게 된 것이었다. 

     

     현재 베트남에는 18,000여개의 사원이 있고, 약 55,000여명의 스님이 계신다고 한다. 불교도가 대부분인 나라. 사회주의 정권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종교. 불교의 힘이 다시 한 번 느껴지는 상징적인 사건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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