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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가 준 교훈. 죽지 않으려면 우겨라!!
    베트남 개괄/베트남 입문 2024. 2. 28. 19:47

      얼마전 읽은 중국 지금이라도 공부하자라는 책의 내용중에 중국인들은 왜 잘못했다는 말과 사과하는 말을 그렇게 하기를 꺼려하는가? 라는내용이 있었다. 이책에서 저자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오랜 시간동안 거의 유전적으로 내려온 생존 본능이 아닐까? 라고 말하며 역사적으로 진나라의 분서갱유에서 문화대혁명에 이르는 역사속에서 학습되고 체화된 본능일 것이라 추측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정적을 숙청할 때 회유책을 쓰고는 단 번에 처단을 해 버린 것이다.

    중국 공산당의 공개 재판 모습

      중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정말 '미안하다' '잘못했다'라는 말을 안하는 사람들이 또 있다. 베트남 사람들이 그렇다. 베트남에 주재원 발령을 받고 들어가 1년 정도 현지 직원들과 친해지면서 회사에도 위계가 잡히고 잘못 된 부분도 보이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그래도 내 직속 부하직원이며 호치민시에서는 가장 우수하다는 호치민 대학을 나온 유능한 인재가 있었다. (실제로 그 친구는 지금 그 회사에서 관리이사직을 맡고 있다. 한국인 법인장 다음으로 가장 높은 직위이다.) 어느날 그 직원이 분명히 잘못한 일이 있어 꾸짖는 데 피식 웃기만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다음부터 안그러겠다고 하면 끝날 것을 마치 나를 비웃드시 쳐다보기만 한다. 더 이상 화를 내면 회사내에서 큰소리가 날 것 같아 우선 참기로 했다. 저러고 있으니 사실 화를 내고 집어 던지거나 때리는 것도 아니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냥 넘어가 주기로 하고 내가 혼자 분을 삮이고 끝내고 마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다음 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싹싹하게 나를 대했고 다음부턴 그런 일 없이 잘하자라는 정도로 혼을 내고 끝을 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무슨 상황에선지 다른 직원이 이 친구와 똑 같은 행동을 내게 하고 있었다. 나는 무척이나 화가 나고 저친구에게서 잘못했다는 말을 들어야만 속이 풀릴 것 같은데 피식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다간 내가 너무 화가났다고 생각한 것이지 눈만 돌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녀석들을 정말 어떡하지?’ ‘누굴 호구로 아는거야! ’이번에 참지 못하고 성질을 버럭 내버렸다. 잘 되지도 않는 베트남어도 썼다가 영어도 썼다가 한국 말로 욕도 썼다가….

      다른 영업팀장이 나를 데리고 나와서야 잠시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그 전에 내게 혼이 난 직원이 내게 다가와 저녁에 맥주를 한 잔 하자고 했다. ‘날도 그지 같은데 그래 우리 술이나 한 잔하자그렇게 그 친구와 단 둘이 술자리를 하는데 내게 우리 베트남 사람들은 자기가 잘못했을 때 상대방에게 웃어 보이는 게 잘못한 것을 시인하는 것이고 미안해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만약 자기가 잘못한 것이 없었다면 정정당당하게 대들지 그렇게 가만이 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같다. 한국과는 달라서 윗사람이라고 자기가 잘못한 것도 없는 데 머리 푹숙이고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중에 좀 더 정확히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항미전쟁(월남전) 당시에 공산당은 시민들을 거리로 끌고 나와 자아비판을 하게하였고 죄를 인정하는 순간 바로 즉결처형을 실시하였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처형을 당하는 것을 눈으로 목격하였고, 이후로는 잘못한 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 하게 된 것이다.

     

      중국인과 베트남 사람이 비슷한 역사적 경험속에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파렴치한처럼 비춰지게 된 것이다그 일을 들은 후로 나는 그 친구에게 우리 한국기업에서 근무하면서 네가 잘못을 인정하고 다음부터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게 되면 그 어느 베트남직원보다 인정받고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가르쳐 주었다. 아마도 그렇게 했나보다. 능력도 뛰어나고 실수도 인정할 줄 아는 직원이었으니 관리이사가 되어 있는 것 같다.

     

      이런 역사적 경험이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에 깊히 뿌리 박히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베트남의 호치민시는 공산당에 의해 항미전쟁을 치르고 1975년 통일되기 전까지 베트남의 수도였다. 미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베트남을 통일시킨 공산당은 당시 남베트남의 자본주의 세력을 몰아내고 토지를 몰수하여 공산당의 당원들에게 나눠 주었으며, 2차례의 화폐개혁을 통해 당시 자본가와 지주 등 소위 가진 자들의 화폐를 휴지로 만들어 버렸다. 무산자계급에서 토지를 받고 권력을 받은 공산당원들이야 상관없겠지만, 자본가, 지주계급은 가지고 있던 것을 모두 잃어버린 꼴이되었고 숨길 수 있는 화폐마저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니 그 이후로는 화폐에 대한 신용이 떨어져 버린 것이다.

      지금도 베트남 남쪽사람들은 베트남동(Dong)을 저축하거나 집에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달러나 금으로 바꾸어 집에 보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남쪽사람들은 돈을 벌은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소비하면서 지금의 생활을 만끽하고 살아가는 편이다. 북부의 베트남인들은 남부의 소비 행태를 비판하면서 저축을 하며 절제된 소비를 하고 있는데 이 또한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은 전쟁상처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하니 우울하기도 하다. 베트남에서 가장 행복한 경우는 호치민시 남자가 하노이 여성을 만나 결혼하는 것이고 가장 바보같은 경우는 하노이 남자가 호치민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하노이 여성이 저축도 하고 가정을 알차게 꾸밀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고, 후자는 재미도 없는 하노이 남성이 펑펑쓰는 호치민시 여성을 만나 얼마 가지않아 집안이 거덜날 것이라는 우스운 생각이 만들어 낸 것이다. 

     

      현실은 정말 사람을 무섭게 변화시키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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