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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과 도시가 어울려 사는 곳 수원화성
    한국 관광 2024. 3. 14. 10:26

      일찌감치 일어나 배낭에 가볍게 한국사 책 한 권만을 넣고 집을 나섰다. 해외여행이 경험에서 얻는 지식 중 하나 공부한 여행은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여행이지만, 준비 안된 여행은 몸과 마음을 그리고 특히 여행지와 여행지 사람들에 대한 인식마저도 나쁘게 만드는 해악임을 알고 있기에 이번에는 수원 화성에 대해 제법 열심히 공부를 하고 떠났다.

      ‘화성 하면?’ 내 마음에는 예전에 뉴스에서 자주 화성 살인사건에 대한 언급이 나왔던 것이 떠오르면서 시골 외지고 적막하고 칙칙하다는 선입견이 깔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하철을 타고 수원역으로 향했다. 똑 같은 지하철인데 1호선을 탄다는 것 만으로 시골로 간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어르신들도 더 많아 보이고 젊은이들의 옷 매무새도 어딘가 좀 떨어져 보이고그래도 옛날의 성벽을 보러 가는 것이니!

    수원향교를 제 1 목적지로 출발했던 내게 제일 먼저 수원에 대한 인상을 준 곳은 길에 핀 야생 장미였다. 어렸을 적 시골 돌담 옆에 피어난, 아직도 그 향기가 기억나는 듯한 그 꽃을 수원에서 발견하였다.

    길가를 둘러 피어난 야생 장미

      수원향교로 가는 표시판을 따라 가다 보니 위에서 향교가 내려다 보이고 몇 몇 여학생들이 돌계단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자연스러운 모습도 보인다.

    외부에서 본 수원향교 전경

      공부를 하고 왔다고 하더니정문을 찾아 내려오니 수원향교는 주말에는 일반인에게 공개를 하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보였다. 하지만 공자님이 도와주신 덕분일까? 선비체험을 하는 학생들이 있어 쪽문이 개방되어 있었고 나는 몰래 들어가 향교 내부의 일부를 볼 수 있었다.

    수원 향교 정문
    향교 중앙에 위치한 공자상
    명륜당

      한 켠에서 몇 몇 남녀 학생들이 옛 선비 옷을 입어 보고 있었다. 저 학생들 덕분에 오늘 난 주말에 왔슴에도 향교를 들어 와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요즘은 어디를 가든 가장 부럽고 멋지고 경외롭기까지 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고목이다. 옛 고적에 한 그루 곳곳이 서서 시간과 사적을 지켜주고 있는 저 고목으로 인해 자연과 인간이 정말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물론 인간은 계속하여 바뀌어 왔지만…

      다음 목적지로 향해 가는 도중 성당의 한 가운데를 지키고 있는 고목에 다시 끌려 성당안으로 들어 갔다가 나왔다. 수원 화성이 조금씩 예뻐지기 시작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고목들이 어울어진 화성

      도심 한 복판을 걷고 있는데 팔달사를가르키는 팻말이 보였고 팔달사 입구를 알리는 정문을 보곤 바로 실망을 하여 들어가는 것을 조금 주저할 정도였다혹시 사이비 아냐?’ 사찰 입구에 사천왕 상도 없고 특이하게 여긴 사찰 맨 앞에 용왕궁이 있다. 인터넷에서도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특이한 점은  1917년 금강산 유점사의 비구니 윤홍법당 스님이 이곳에 최초로 사찰을 건립하였다는 것이다. 이후 1980년대에 현재의 주지이신 법행스님이 이후 커다란 불사를 일으켜 사찰이 커졌다는 정도가 전부이다. 하지만 한 군데 한 군데 법당이나 범종, 대웅전 등을 살펴보면서 다른 사찰과는 뭔가 다른 아기자기함이 배여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그것이 처음 팔달사를 건립하신 윤홍법당 스님이 비구니 이기 때문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팔달사 일주

      대웅전에서는 주지스님께서 법회를 준비하시고 계시는 것 같았는데 마이크 까지 귀에 꼽고 계셔서 신기해 했었는데 이후 사찰을 나와 수원행성으로 가는 도중에 스님의 불경 소리가 들려 나오고 있어 그 이유를 알았다.

      시내 전체가 관광지처럼 되어 있는데 그냥 도심인지 관광지인지를 아직 구분하기가 어려운 것 같았는데 내 눈 앞에 성벽이 나타났다. ‘야호 이제야 정말 관광지에 도착했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들뜨기 시작했다.

    수원 화성 성벽

      10m 올라 갔을까? ‘정말 시내의 한 복판에 서 있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화성이라는 이 도시에 대한 은근한 끌림이 강화되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이렇게 아름답게 성을 만들어 내부의 백성들을 지켜 주고 자연을 즐기며 살아 갈 수 있다면 이 곳이 바로 낙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城과 도시 그리고 백성이 하나 되어서 살 수 있는 평화로운 도시행성터를 따라 걷다가 수원행성이 있다는 간판을 따라 산기슭을 내려 오니 수원행성 입구에서 전통 무술 데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정조 대왕이 친위대로 편성한 장용영의 위용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조의 친위부대 장용영의 무술 재현

      어디를 가든 고목이 정취를 더해 주었고 뭐 그리 서두르냐고 사진도 좀 찍고 잠시 쉬었다 가라며 손짓하는 듯 하다.

    정조대왕님의 사도세자 아버님과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 대한 사랑이 수원화성 화성행궁내에 가득 배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동행성에서 왼편의 산 언덕 위에 금불상이 보이는 듯 하여 도로가 없는 곳을 가로질러 올라가 보니 스님들의 교육기관이 있었다. 수원 화성의 군데 군데 숨겨져 있는 보물들. 마치 초등학생들이 소풍을 와서 보물찾기를 하면서 누군가 발견한 자그마한 보물에 소리를 지르고 달려 들어 구경이라도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새롭게 발견한 초록색 바탕의 탱화에 나는 혼자서 또 한 번 환호를 올렸다. 옆에 달려 들어 신기해 하고 부러워 해주는 친구가 없이 혼자 하는 보물찾기 인데도 너무 신이나 힘든 줄도 모르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 내려갔다.

      전통무술을 하던 곳 바로 앞에서는 젊은 청년들의 댄스 쇼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수원 글짓기 행사를 주최하는 곳의 비유명인이 춤을 선사하고 있는 것이었다.

     열정적인 관객들의 환호와 응원에 공연자들은 더 더욱 신이 난 것 같았고, 난 마치 수원 축제에 특별 초대받은 귀빈이 된 것처럼 하나하나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있었다.

     나의 보물 찾기는 순간 순간 계속 되었다. 시끌벅쩍 사람들의 춤판이 벌어진 저 뒤의 산 언덕에선 이 안의 평안을 지키기 위해 외부를 경계하고 있는 정자가 보이고 행사장의 눈을 오른쪽으로 조금 돌리자 야생의 흰 꽃들이 행사장의 음악소리에 흥겨운지 나름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모습을 나는 찾아내고 말았다.

      다시 성벽쪽으로 가 도시를 둘러 보려 하다가 이번에는 전통가옥 전시관을 발견하였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보물이었다. 혼인에 대한 전시관이 있어 들어가는데 가이더 한 분이 내게 다가와 전시관의 전체에 대한 안내를 해 주었다. 오늘 수원행궁과 이곳의 전통가옥을 보면서 생겼던 의문에 대해 물어 보았는데 그 설명이 상당히 수긍이 갔다.

     “한국 전통 가옥들 사이에는 왜 정원수나 정원이 없는 것인가요?”

     “중국과 일본의 정원은 가옥의 앞쪽에 위치하는데 한국은 가옥의 안쪽이나 뒷편에 별도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여성은 밖으로 나갈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정원을 집의 안쪽에 놓았으며 또한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가옥의 아름다움을 없애기 위해 가옥,정원수 등을 파괴한 것도 그 이유중의 하나입니다또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궁 안에는 암살자가 들어 올 수 있기 때문에 나무를 심지 않았으며 바닥도 모래 바닥으로 만들어 사각사각 소리가 날 수 있도록 만들어 인기척이 나면 바로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기쁘지 않은 이유 때문에 우리의 아름다운 가옥이 황량해 진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전통차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소개해 준 가이더의 안내에 따라 2층 영빈관에 올라가 따뜻한 유자차에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디서 오셨는지를 물어 오시는 분께 서울에서 왔습니다라며 외국인도 아니여서 좀 창피하다 싶었는데 서울에서 여기까지 일부러 와 주시니 너무 고맙습니다. 많은 것 보시고 즐거운 시간 되시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씀에 이것이 정말 최상의 대우를 받는 서비스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누구든, 어디서 왔든, 무엇을 위한 것이든 이 곳을 찾아 주신 고객이 진정 고마운 분이다라는 생각 자체가 관광 대국으로 가는 첫 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곽 주변을 돌아 보며 푸른 잔디들을 볼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자체 힐링이 되는 것 같았다. 꼭 다시 한 번 우리 가족들을 데리고 와 봐야겠다. 편안히 천천히 자연만 즐기고 걷고 앞선 뛰어 다니며 보물찾기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흐믓해 할 내 모습이 보인다.

    수원 화성 봉화

      대단한 과학 기술의 성공도 위대한 임금없이는 절대 빛을 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중국의 만리장성도 가보고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 유적지, 베트남의 성터를 가보았지만 우리 화성처럼 온전히 그리고 무엇보다 백성들과 같이 생사고락을 지금것 유지해 온 곳은 보지를 못한 것 같다. 유럽이나 일본의 성 들 또한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곳은 규모가 작은 자기 세력만을 보호하기 위한 폐쇄적 성이라면 우리 화성은 개방적이고 융합적인 성이라 할 수 있겠다. 유네스코에 등재됨이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수원화성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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